결핍의 시간을 견딘 '코로나학번'..."드디어 졸업"

그들이 밝히는 애환...힘들었지만 성장의 시간으로


문서영 서호진 송민호 정지훈
8/14/2025 5:13:44 PM 등록 | 수정 8/14/2025 5:14:27 PM
기획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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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는 감자’가 된 것 같았어요. 교수님 말씀도 못 알아듣겠고, 후배들이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당혹감. 그런 게 있었죠.”
코로나 시기에 대학 첫 2년을 보낸 화학공학과 20학번 이교현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2020학년도에 입학한 일명 ‘코로나 학번’은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캠퍼스의 일상을 누릴 수 없었다.
새내기 시절에만 즐길 수 있는 각종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실습 수업은 온라인 이론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며 입학했지만, 대학시절의 절반 이상을 모니터 화면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 여파는 코로나의 그림자가 걷힌 이후에도 이어졌다.
대면 활동이 재개되었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동기들이 더 많았고, 동아리에 새로 들거나 학과 행사에 참여하기에는 이미 부담스러운 학년이 되어있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성적 평가 기준이 완화되어 그나마 좋은 학점이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막상 취업시장에 나가니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기업이 코로나 학번을 기피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이 모든 혼란을 지나 코로나 학번이 드디어 졸업한다.
코로나 학번에게 지난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등록금은 그대로, 실습은 집에서

공과대학과 예술디자인대학의 학생들에게 비대면 수업으로의 전환은 유독 커다란 공백을 남겼다. 이들이 배우는 학문에서는 실험과 실습이 이론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공학과는 이론을 직접 응용해보면서 산업 연계를 추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러니까, 실험을 빠뜨리면 학문으로서의 의의가 반쪽짜리가 되어버려요.”(이교현 화학공학 20학번)

“실습이 너무 중요해요. 저희 학과의 이론수업은 고작 만든 옷을 파는 과정, 즉 마케팅 방법론에 관한 부차적인 것들이죠. 중심은 옷을 만들고 생산하는 실습 위주의 과정입니다.”(최지연 의상디자인 21학번)

학생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최지연 씨는 “몇몇 실습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 집이 굉장히 더러워졌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학교 장비를 쓸 수 없던 탓에 2백만 원이 넘는 미싱기를 사비로 구입해야 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교현 씨는 대면 기준 2시간가량 소요되는 실험 수업이 온라인에서는 20분만에 끝나버리는 상황에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꼈다. 실험 장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없어, 전역 후 복학을 했을 때 장비의 이름도 모르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교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후배들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고 한다. “말하는 감자 같았다”는 그의 표현에서 당시의 막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기 얼굴도 모르는 신입생

“저는 특정한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새내기로서 OT, MT 같은 행사를 통해 같은 과 사람들과 끈끈한 연대를 느끼고 싶었는데 그런 경험의 기회가 차단되었던 게 아쉬워요.” (김성민 응용통계학과 20)

코로나 학번에게는 단순히 행사 및 활동 참여의 기회가 부족했던 것뿐 아니라, 그로 인해 친구를 사귀거나 인간관계를 넓힐 기회 자체가 적었다.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 시기 친구를 사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학생이 절반에 달했고, 참여했더라도 온라인을 통한 제한적 활동에 그쳤다는 응답이 25%였다.

결국 다양한 활동의 제약은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고, 학생들은 그 단절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문 응답자 79명 중 40명은 학교나 학과 커뮤니티에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평균 소속감 점수는 5점 만점에 1.75점. 수치가 보여주는 소속감의 공백은 꽤 깊었다.

김성민 씨는 “코로나 때의 단절감은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절된 환경 속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조차 없었다는 점이 이들을 더욱 괴롭게 했다.
‘코로나 시기 가장 도움이 된 학교 지원’을 묻는 질문에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68.4%에 달했다.

“과에 아는 동기, 선배가 없는 건 외롭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정보’가 부족했다는 거였어요.” (김영훈 산업공학과 20학번)

실제로 코로나 시기에는 선배나 동기와의 정보 공유가 어려워, 수강신청 요령이나 교내 프로그램, 졸업요건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스스로 찾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커뮤니티 내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려주고 배우는 구조가 무너진 탓에, 많은 학생들이 제도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막막함을 더 크게 느꼈다. 단절은 단순히 외로운 감정에 그치지 않고, 방향 없이 방치되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멈춰버린 시간, 나만의 방식으로

하지만 이 시기를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은 이들도 있다.
“여유 시간이 많아진 만큼 취미와 자기계발에 집중했어요.”
이소영(의생명공학•20학번)씨는 화상영어, 영어 회화 학원, 헬스 PT, 피아노 등 다양한 도전을 이어갔다. 그는 “각 활동마다 눈에 띄는 성장은 없었지만 각 부분에서 조금씩이라도 성장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말하며 그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양윤도 씨(생명과학특성•20학번)역시 코로나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학과 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줌 스터디를 진행했다. 직접 규칙을 정하고, 느슨해지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며 학습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양윤도 씨는 “줌 스터디는 직접적인 성과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때 잡힌 학습 습관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취업 준비는 알아서...기업들은 ‘코로나 학번’이라고 외면

이소영 씨는 “코로나로 실험이나 조별과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자소서에 쓸 소재가 부족했어요.”라며 현실적인 아쉬움을 털어놨다.

양윤도 씨는 취업 준비 자체가 막막했다고 한다. “친한 선배도 없고,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어요.” 그는 혼자서 인스타그램,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았고, ‘위인전’ 같은 교육센터나 상담 센터 프로그램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 학번 채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매일경제가 HR테크 기업 인크루트에 의뢰해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442명에게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3.8는 코로나 학번의 경쟁력 하락을 우려했다.

경쟁력 부족을 염려한 응답자의 65.6%(복수응답)는 ‘조직 내 융화와 적응’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협업 등 팀워크’ 우려가 있다고 답한 비율도 52.7%에 달했으며 ‘전공 지식 부족'을 걱정한 응답자도 33.2%나 됐다.

코로나 학번은 비대면 학기를 선택한 것도, 그로 인한 제약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업은 이들에게 ‘적응력 부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있다. 경험의 공백은 온전히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구직자에게 전가된 셈이다.

돌이켜보니, 공백이 아닌 성장의 시간

단절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내적 성장을 이룬 이들도 있었다.

“저는 코로나 시기에 감정적인 면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양선희(국어국문•20학번) 씨는 코로나 시기가 오히려 내적 성장의 기회였다고 밝혔다. 양 씨는 코로나 시기 이전까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친구들을 만나고 어울렸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통해 감정적으로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껏 급급하게 사회활동을 하느라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안(국어국문•20학번)씨 역시 이 시기를 통해 내적·외적 성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힘과 마음을 다잡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운동, 운전면허 취득, 여행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성취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관계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과 얕은 관계를 맺었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소수의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됐어요.”
김 씨는 코로나 시기가 오히려 관계의 폭과 깊이를 함께 확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학번, 단절을 딛고 연결로

코로나라는 이름의 긴 터널은 20, 21학번의 대학생활에 큰 공백을 남겼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시절을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그 공백을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다.

비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저마다의 의미를 만들어낸 코로나 학번은, 이제 단절을 딛고 다시 연결을 배워가며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핍의 시간을 견딘 이들이 남긴 흔적은 분명하다. 학교를 떠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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